김두관은 1959년 4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가난한 어부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해외로 돈벌이를 나간 형들[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해종합고등학교(현 남해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대학교 어문계열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문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고, 이 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한다. 대학 시절 동생 김두수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 남해로 낙향해 민중의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5%도 채 되지 않는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박희태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이 후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기반을 쌓아나갔고, <남해신문>이라는 지역 신문사를 설립해 운영하며 신망을 쌓았다
김두관은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상남도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돼 친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 행위이자 경남도정을 저버리는 타살 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할 때 보인 일방적 비방에 가까운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
그 뒤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한, 21대 총선에서 당의 요청이자 자신의 선택으로 김포를 버리면서 양산시 을 선거구에 도전하였고,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1년 7월1일 특권과 차별 없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제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7월 19일에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서 전날 윤석열이 참배하며 만지고 간 묘비를 더럽혔다며 손수건으로 닦아 화제가 되었다.
김두관 프로필
출생:1959년 4월 10일
고향:경남 남해군
나이:63세 (만 62세)
소속:더불어민주당지역구경남 양산시을
학력사항
~2011.동아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명예박사 수료
~1987.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7.남해종합고등학교 졸업
경력사항
2020.05.~제21대 국회의원
2016.05.~2020.05.제20대 국회의원
2016.~더불어민주당 김포시 지역위원회 위원장
2014.12.~2015.12.새정치민주연합 김포시 지역위원회 위원장
2005.~2016.자치분권전국연대 상임고문
2014.~새정치민주연합 공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2010.07.~2012.07.제34대 경상남도 도지사
2006.02.~2006.06.열린우리당 최고위원
2005.05.~2006.01.노무현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2003.02.~2003.09.제5대 행정자치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