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프로필 기자 국적 나이
강형원은 사진기자이다.
1963년 전북 고창 출생으로 2024년 기준 연 나이 61세다.
1975년 중학교 1학년때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전 가족이 이민을 갔으며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한 선생님의 권유로 졸업앨범 사진을 촬영하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칭찬을 계기로 사진기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UCLA에서 정치학 · 국제외교학을 전공했고 대학신문 인턴 기자로도 활동했다.
이후 LA 타임스, AP 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 통신 등 미국 주류 언론사에서 사진 기자로 근무하며 LA 4·29 폭동, 이라크 전쟁, 9·11 테러 등 국제적인 뉴스를 발 빠르게 취재했다.
또한 6·10 민주 항쟁,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하다 경찰로 오해받아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북한과 중국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 국적까지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획득했다. 1995년과 1997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북한 주민의 삶을 취재했다.대신 모든 기사를 한국 이름인 '강형원'으로 쓰기로 했다. LA타임스 1면에 강 기자의 사진이 실릴 때에도 어김없이 '강형원'의 이름이 달렸다.
강 기자는 "동료 기자들이 '왜 미국 이름을 안 쓰느냐'고 물으면 미국 사회에 한국 이름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며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정신이 한국이라는 것은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주신 이름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는 것도 이유다.
강형원은 퓰리처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1992년 LA 폭동 당시 생생한 현장보도로 93년 스폿뉴스 보도부분을 받아냈다. 이후 AP워싱턴지국사진부장으로 활동하던 1999년에 지국의 사진기자 16명 등 100여명을 동원, 빌 클린턴 대통령을 둘러싼 섹스 스캔들을 취재했고 이후 이와 관련된 사진 20장을 밝혀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9년 로이터통신을 퇴직했으며 한국으로 건너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전국을 돌며 우리 문화유산을 취재해 《미주한국일보》와 《코리아 헤럴드》에 한국어와 영어로 칼럼을 연재하는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시민과 학생,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펼치며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1987~1988년 한국에 머물며 취재한 순간들을 모아 사진집 《민주화의 현장: 6월 항쟁에서 올림픽까지》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