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프로필 사주 그림 쌍둥이 나이 고향 아내 아들 연쇄살인사건 근황 사형집행일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사람 20명을 살해한 최악의 연쇄살인범이다.
유영철 고향 나이 집안
1970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서 3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으며 2024년 기준 연 나이 54세다.
형 2명과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은 유영철 본인과는 이란성 쌍둥이라고 한다.
유영철의 아버지는 큰형을 낳고 월남전에 참전했고, 참전 후에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한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가 심했다고 한다. 유영철은 고창에 있는 무당이었던 할머니 집에서 자라다, 6세가 되던 해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계모 슬하에서 형제들과 자랐으며 유영철의 아버지와 계모는 밤만 되면 유영철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이후 거주지를 옮겨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하게 된다. 결국 초등학교를 2번 입학한 셈이 되며 만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일대에서 보냈다.
중학교 1학년 무렵 아버지가 사망하고 유영철과 형제들은 생모와 결합했다. 유영철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로 살림을 꾸렸으며 그는 계모 밑에 살던 시절보다 행색이 훨씬 나아 보였다.
유영철 학창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한 유영철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생활기록부에는 말이 없고 '애어른' 같았다는 말이 남겨져 있으며 그림과 운동에 소질을 보였으나 유난히 개구리를 잡아 목을 비틀고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동물에 관심이 많던 유영철은 친구들한테 의사가 되겠다고 자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친엄마와 가정을 꾸려 전보다 밝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싸움을 잘 하던 유영철은 주변 고등학교의 폭력조직과 싸움을 벌이고 선도부 반장을 맡아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보면 선배라도 무릎을 꿇게 했다. 교사 대신 교사한테 혼나고 있던 학생을 폭행하는 등 폭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세운상가에서 불법 LP판을 훔치고 나서는 친구들한테는 '어차피 불법이니 절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화가를 꿈꾸던 유영철은 예술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색약 때문에 낙방하자 좌절하였고 대신 국제공고에 입학하였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해 자퇴했다.
유영철 범죄 결혼 이혼 아들
1988년 8월 23일에 이웃 누나의 방에서 돈 23만원과 기타를 훔쳐, 야간주거침입죄와 절도죄로 소년원에 구속됐다. 성장기 때 경찰을 동경하여 응시 시험까지 쳤으나 색맹으로 좌절했다. 이후 경찰관을 사칭하여 금품 갈취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유영철은 21살 때 마사지사 [황 모씨] 와 1991년에 결혼하여 바로 아들을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 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20대의 대부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간질(증세)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2000년 3월 15일, 특수 절도와 강간 등으로 구속되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아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002년 5월,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전처로부터 이혼을 통보(당시 아들 초등학교 4학년)받았다. 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교도소 안에서 십자가를 부러뜨리며 신은 없다고 믿게 됐다.
살인의 계기
이후 양육권을 뺏기고 일방적인 이혼을 당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꿔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이때 그는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9명을 살해한 또 다른 연쇄살인자 정두영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그의 범행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11일 출소한 유영철은 10여일간 친어머니의 집에 머물렀다. 이 기간 유영철은 교도소에서 연구한 살인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칼과 망치 등을 이용해 큰 개를 죽이며 가장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실험을 했다. 그렇게 손잡이가 짧은 4㎏짜리 쇠망치를 '살인 무기'로 삼기로 결정하게 된다.
20명 연쇄살인
이후 유영철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부유층 노인이나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도합 20명을 살해했다.유영철은 자신의 뒷모습이 CCTV에 찍혀서 수배 전단에 오르자 출장마사지사들이나 전화방 도우미들을 집으로 부른 다음 여성들의 머리를 해머로 때려죽이고는 시신을 토막 내서 암매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잔인하고 끔찍한 수법과 기괴한 행태는 지면에 옮기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그가 반젤리스의 ‘Conquest of Paradise’란 음악을 들으며 피해자들의 시신을 훼손했다는 사실 쯤은 극히 점잖은 축에 든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판결
법원은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범행으로 사회에 큰 충격과 경악을 준 만큼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라며 2004년 12월 13일 사형 선고했고, 유영철은 20년째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유영철 근황
유영철이 감옥에 들어간 후 교도관과 동료 수감자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려 온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교도관의 목을 졸라서 독방에 수감된 적도 있으며 교도관을 통해 야설을 밀반입한 것은 이미 유명한 사건이다. 그 외에도 꾸준히 교화 불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지금 판결받은 형벌보다 더 무거운 것이 없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는 심보로 나가는 것이다. 끝내 감옥에서도 유영철은 교화되지 않았다.
2019년 그것이 알고싶다와 김복준 위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근황을 보면 더 가관인데 유영철이 걸핏하면 꾀병을 부려서 혈세를 낭비하게 하며 사실상 교도소에서 교도관들 머리 꼭대기 위에 군림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고 한다. 선술된 야설 밀반입 사건에 대해서도 김복준 위원은 해당 교도관이 뇌물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영철에게 하도 시달린 나머지 타협의 의도로 '이거라도 먹고 떨어져서 조용히 있으라'는 뜻에서 준 것일 거라고 해석하였다. 그 정도로 유영철은 현재 형 집행법을 모조리 어기면서 반성 따윈 없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유영철 아내 아들
그의 아들은 평범하게 성인으로 자라 여느 사람들처럼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생활도 하는 등 일반적인 사회인으로 살고 있으며 놀랍게도 자기 아버지가 '그 유영철'이라는 건 전혀 모른다고 한다. 전처 황 씨가 아들이 모르게 하려고 실로 처절한 노력을 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유씨가 아니라 황씨로 살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황 씨는 아들이 자립한 후인 2013년경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서 전 남편에게 살해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