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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프로필 변호사 전 검사 고향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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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프로필 변호사 전 검사 고향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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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는 법조인으로 검사출신 변호사이다.

이인규는 1958년 경기도 용인군 출생으로 2024년 기준 나이 66세다.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이후 코넬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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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춘천지검 원주지청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등의 요직을 거쳤고 2007년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전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지냈으며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으로 영전했다.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후 2009년 7월 14일을 끝으로 사표가 수리되어 검찰을 떠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한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무현 뇌물수수 혐의 수사
이인규는 검찰 특수부의 주요 보직을 거치지 못했으나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이 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다.이 수사의 발단은 2008년 7월 국세청 한상률 전 청장이 관할이 아닌 조사4국을 시켜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박연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며 시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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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검찰에 구속될 때 박연차는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며 입을 다물었지만 검찰은 공익근무요원인 외아들의 병역기록을 검토하고 태광실업 경영을 맡고 있던 장녀를 비롯한 세 딸과 사위를 출국금지하고 소환했으며 상속세를 탈세했는지 검토를 시작하자 결국 박연차 회장은 수사협조를 약속했다. 그러자 딸과 사위에 대한 출국금지가 풀렸으며 외아들의 병역문제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이 때 검찰은 박연차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의 거래는 퇴임 후 사적거래라 판단했다.

그러나, 몇 개월지나 검찰 인사 이후 검찰 수사팀은 다시 꾸려졌고, 이인규, 홍만표 등이 합류했으며 이인규는 공공연히 이전 검찰의 수사기록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고 이후 주변 인물 및 일가족의 줄소환이 시작되었다.이어 2009년 4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고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했다.

이 당시 검찰청자에 도착한 전직 대통령을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음짓는 몇몇 검사가 카메라에 찍혀서 유명해졌다.(문재인은 자서전에서 당시 조사실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대통령 소환조사시 대단히 건방졌으며,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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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5월 13일, 회갑 선물로 받은 억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권양숙 여사가 검찰에서 증언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이인규 중수부장 밑에서 수사를 맡은 홍만표 기획관은 이 직후 '검찰 내 빨대(내부 취재원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색출해 처벌하겠다'고 격앙되게 반응했지만 흐지부지 끝냈는데, 검찰 내에서는 당시 그가 말한 '더러운 빨대'가 자기 윗선이어서 흐지부지되었다는 루머가 있었다.이에 이인규는 임채진 검찰총장 등과 함께 민주당과 시민에 의해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인규는 6월 12일 6개월에 걸친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5분만의 발표로 종결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뇌물수수'로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는 않고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고 하였고, 수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며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변호사는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변호인단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책임 회피와 자기 변명으로 일관됐다고 비판했다.

이인규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 "평생을 검사로만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저승에 가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랬느냐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빚을 갚으라고 말할 것이다."라며 반발했다.

2015년 1월, 이인규와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우병우 당시 중수 1과장이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으로 내정되자, 이인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한 진술은 국정원의 조작이었으며, 당시 국정원은 대검에 망신주기 언론플레이를 제안하였다고 밝히면서 국정원이 언론 플레이 한 것으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여 다시 한번 뉴스가 되었다.

우병우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이 된 이후 불법적인 재산증식, 넥슨 넥슨코리아 부동산 매입 논란, 정운호 몰래 변론 의혹 등으로 끝임없는 의혹의 중심인물이었다.

2016년 12월 '박연차-반기문 23만 달러 수수설'과 관련하여 아이러니하게 당시 검사였던 이인규에게 언론 인터뷰가 쇄도하는 웃픈일이 발생했는데 이에 대해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그러면서 자기가 입을 열면 다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도 했다.


2017년 7월 다니던 법무법인을 퇴사하고 8월 출국한 정황이 밝혀졌는데 이 시기는 하필 국정원 개혁위가 소위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한 시점이었다.


2018년 6월 25일 돌연 또 다시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입장문을 보내어, 논두렁 시계 보도는 원세훈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2019년 8월에 미국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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