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프로필 헤어디자이너 이웃집 백만장자 집 재산
이상일은 국내 1세대 헤어디자이너이자 패션디자이너, 그리고 현재는 복합문화공간 '라드라비'의 대표를 맡고 있다.
1956년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났으며 2025년 기준 연 나이 69세다.
그는 젊은 시절 패션계에 발을 들여 앙드레김의 영향을 받으며 복장학원을 졸업한 후 곧바로 고급 양장점에 스카우트되었다. 하지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명동의 양장점들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이상일은 우연히 낡은 중국대사관 골목의 책방에서 보그지 기사를 통해 남자 미용사라는 직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는 그가 새로운 직업을 모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80년, 당시 한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남자 미용사로서 프랑스 국립미용학교를 수료한 이상일은 프랑스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3년, 그는 명동에 '헤어뉴스'라는 새로운 이름의 미용실을 열어 'OO미장원' 일색이었던 당시 미용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다른 미용실의 10배에 달하는 커트비 1만 5000원을 받았고 샴푸, 미용기기, 가구 등 모든 걸 최상급으로 구성하는 '고급화 전략'으로 부자들의 지갑을 열었다.
또한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그들을 단순한 '미용사'(hairdresser)가 아닌 전문적인 '헤어 디자이너'로 호칭하며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여 그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故 신성일, 장미희, 김완선 등 당대 최고 톱스타들의 헤어 아티스트로 활약했으며, 故 앙드레김 패션쇼 상징인 '양머리 스타일' 창시자이기도 하다.
1987년에는 서울 압구정에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미용실을 선보였고, 나아가 도산공원에는 미용실, 카페, 베이커리 등을 한데 모은 혁신적인 공간인 '파크뷰 바이 헤어뉴스'를 오픈했다.
그렇게 미용 업계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는 2012년, 미용계에서 은퇴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펜슬 드로잉' 작가로서 인생의 제2막을 시작했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살 집을 짓기로 결심한 이상일은 경기도 이천에 미리 사둔 산을 마주한 순간, 그 산자락에 어울리는 집의 구조를 직감했다고 한다.
그는 혼자만 보기 아까운 아름다운 산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채 집을 지었다. 공사 중 바위가 나오면 억지로 없애는 대신 계단의 폭을 좁혀 바위를 그대로 살려두었고, 땅이 평평하지 않으면 깎아내는 대신 집 자체에 자연스러운 경사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그림 작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후, 이상일은 이천시 모가면 산자락에 '라드라비'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이곳은 갤러리, 다양한 체험 공간, 단체 숙소, 레스토랑과 카페, 베이커리, 그리고 전통 한옥과 현대적인 서양식 숙소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공간으로, 방문객들에게 예술과 휴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EBS와 E채널이 공동 제작하는 예능 프로그램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 첫 번째 백만장자로 출연했다.
방송에서 그는 1만 평 면적에 22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집을 공개했으며, 과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다 한국 최초의 남성 헤어 디자이너가 된 인생 이야기를 비롯해 故 앙드레김 패션쇼의 상징인 '양머리 스타일'을 창시한 비화 등을 밝혔다.
또한, 그는 막대한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