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 프로필 별세 기상캐스터 사망이유 빈소
김동완은 대한민국의 기상캐스터다.
1935년 2월 10일에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고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12월 수학 교사가 되려고 상경해 서울대 사대 원서를 내러가는 길에 우연히 국립중앙관상대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생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 1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1965년에는 기상예보 담당 사무관(오늘날의 5급 공무원)으로 승진해서 1981년까지 중앙기상대 예보관을 맡았다.
생계가 어려워 비번 시간을 이용해 택시 운전을
하거나 연탄 가게를 열어 연탄 배달을 하는 등 투잡을 뛰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TV뉴스의 날씨예보는 기상캐스터가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기상대를 현장 연결해서 예보관(공무원)이 딱딱하고 무뚝뚝하게 전해주는 날씨예보를 내보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딱딱한 날씨예보는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고, 이 역할을 맡게된 그는 선배들과는 달리 나름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날씨예보에 관심을 가지게끔 예보 전달에 생기를 불어 넣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그의 일기예보는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1972년부터는 기상대가 아닌 방송국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해서 날씨만 전문적으로 전달하는 코너가 신설되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TV뉴스 마지막에 기상캐스터가 날씨를 전하는 코너의 시초라고 볼수있다. 요즘이야 기상캐스터가 나와서 날씨를 전해주는 별도의 코너가 있다는 것이 별로 이상할 것이 없겠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1982년 9월 중앙기상대를 떠나 MBC 보도국 보도위원으로 초빙된 후 1996년까지 뉴스데스크와 아침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기 예보를 담당했는데, 특히 아침 뉴스 시간에는 일기도를 직접 그려가면서[3설명하기도 했다.
뉴스데스크에 오래 출연한 관계로 단순한 기상 캐스터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확히 말하면 오늘날의 기상캐스터의 직책과는 엄연히 다른 기상대 공무원(→ 퇴직 후 보도위원) 자격으로서의 출연이었다. 물론 넓게 보면 오늘날의 기상캐스터 역할의 원조격 정도라고 볼수는 있을 것이다.
1983년 부장대우, 1986년 부장급으로 각각 승진하고 1992년 1월 프리랜서로 전환했고, 1996년에 방송에서 은퇴했다.(1996년 마지막 방송) 이후 민간 기상 정보 업체인 K-Wearher의 이사로 활동하다가, 2000년 제16대 총선때 자유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고향인 경상북도 김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러나 겨우 1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한나라당 임인배 후보는 물론 민주당 박영우 후보에게도 밀리며 3위로 낙선했다. 본인은 당연히 당선될 것이라 믿고 있었으나 낙선한 후 자신에게나 지역주민들에게 원망하는 마음도 가져봤다고 했다.
이때 많은 빚을 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 30억원 가량을 날렸다고 한다. 또한 부인이 당뇨병 치료시기를 놓쳐 실명까지 하게되어 이후로는 부인의 뒷바라지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가끔씩 방송에 출연한다.
2007년에는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했고(1 2 3 4) 2010년 10월 5일에는 뉴스데스크 40주년을 맞아 당시 기상캐스터로 활동하던 박은지를 대신하여 오랜만에 일일 기상캐스터가 되어 날씨를 전해줬다. BGM[이나 그래픽도 그 시절 그대로다! 김동완 캐스터도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느낌 그대로 날씨를 전해줬다. 뒷배경으로 흘러나가는 영상에는 빈 지도에 일기도와 전선을 죽죽 그려가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2013년에는 채널A 분노왕에, 2016년 4월에는 MBC 능력자들에 출연했다.
2024년 9월 15일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유족은 1남4녀로 김정선·김정경·김정미·김미경·김수영(아들)씨와 사위 강동수·구수회·윤성우·론씨, 며느리 이경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마련됐다. 17일 오전 7시30분 발인을 거쳐 김포 문수산 나무 곁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