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프로필 의원 변호사 김건희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며 제15·16·17·18·21대 국회의원이다
김영선 고향 학력 나이
1960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대초리에서 태어났다.
부산동신초등학교, 한성여자중학교, 신광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반수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공법학과로 졸업했다.
이후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1년 사법연수원을 20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90년대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했다.
김영선 정치 활동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5년만인데다 만 35세의 나이로 당선되었으니 국회 첫 등원 자체가 매우 빨랐다. 이후 신한국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다시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이번에는 바로 앞 자리인 21번까지만 당선되면서 낙선. 이후 2002년 재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전재희 전 의원이 사퇴하면서 의원직을 승계했다.
이후 한나라당 부대변인, 이회창 전 총재의 법률담당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하였다. 2003년 한나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같은 해 한나라당 제7차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김문수에 밀려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같은 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자, 잔여 임기인 24일간 당대표의 직무를 대행했다.
이후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구 일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국회 정무위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김현미 후보에 밀려 낙선하며 5선이 좌절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남경필에게 밀려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2016년 당내 경선을 뚫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다시 고양시 정(구 일산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7년 8월 일찌감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김태호 전 경상남도지사가 전략공천을 받자 이를 적폐로 규정하면서 홍준표 전 대표를 강하게 비난하였고 안홍준 예비후보와 연대하여 공천 무효 확인 소송과 공천 효력 정지 등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법적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창원시장 단일화에서 안상수 후보를 지지하다가 당원권 3년 정지 징계를 받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현역인 김성찬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여 무주공산이 된 창원시 진해구에 출마하려 하였으나 경선에서 탈락했다.
21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경남 창원 진해구로 옮겨 출마하려 하였으나 경선에서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하였다.
2022년 6월에 치뤄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어 대한민국 21대 국회 최다선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4년 2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홍철 의원을 상대하기 위해 김해시 갑으로 출마지를 옮겼지만, 당 공관위나 지도부는 따로 깊게 상의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4년 3월 2일, 컷오프(공천 배제)되었다. 보통 일반적으로 보궐선거 당선자는 암묵적으로 다음 정규 선거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편 이지만 5선이라는 국회의장급의 높은 선수 대비 낮은 당내 기반, 그리고 PK 내에서도 낮은 기반 때문에 보궐선거 당선자임에도 컷오프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9월에 당시 공천에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개입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